장제원 - 말할 수 없는 진실과 증명되지 않은 혐의 사이에서: 성폭력과 사회적 정의를 다시 묻다
- kava2016
- 4월 3일
- 4분 분량
[이희엽 칼럼 14]
최근 장제원 전 의원이 성폭력 의혹 보도 이후 극단적인 선택을 하며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끝내 아무 말도 남기지 못했고, 진실은 그와 함께 침묵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또다시 피해자의 고통과, 가해자로 지목된 이의 죽음 사이에서
무겁고 복잡한 질문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왜 피해자들은 오랜 시간 침묵했을까?

왜 그 말을 듣자마자, 누군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생을 마감했을까?
우리는 피해자의 고통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을까?
그리고 동시에, 우리는 그 고통이 사실인지 아닌지 따지기도 전에
누군가를 사회적으로 매장해버리는 습관에 익숙해진 건 아닐까?
이 칼럼은 성폭력이라는 민감하고 중대한 사안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시선과 구조,
그리고 그 안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견딘 이들과 말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떠난 이들의 이야기를 되짚어보려 합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한국폭력학대예방협회(KAVA)가 왜 지금 이 시점에 새로운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하는지도 함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피해자는 왜 말하지 못하는가 – 침묵의 심리
성폭력 피해자들이 즉각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종종 “내가 잘못한 건 아닐까?”, “혹시 나만 이상한 거야?”, “이걸 말해도 믿어줄까?” 하는 심리적 회의와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심리학적으로도 성폭력은 피해자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훼손하는 심각한 트라우마이며, 피해자는 사건 자체를 무의식적으로 ‘잊거나 덮는’ 방어기제를 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과정에서 시간은 흐르지만 고통은 사라지지 않고 응고됩니다.
게다가 한국 사회는 피해자에게 질문을 던지기보다 의심을 먼저 표합니다.
“왜 그땐 가만히 있었어?”, “왜 그 옷을 입었어?”, “그 자리에 왜 갔던 거야?”
피해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현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2차 피해를 낳고, 피해자는 다시 침묵을 선택하게 됩니다.
2. 권력과 위계 속 침묵의 강요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존재하는 ‘권력’은 또 다른 벽이 됩니다.
사회적 지위, 직장 내 위계, 정치적 영향력은 피해자의 입을 틀어막습니다.
예컨대 직장 내 상사로부터의 피해라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 주변 동료들의 방관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심지어 피해자는 가해자의 지지자들로부터 “정치적 의도다”, “음모다”라는 비난을 받습니다.
이는 사건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피해자는 마치 자신의 고발로 인해 한 인간을 ‘죽음’으로 몰고 간 가해자로 낙인찍히기도 합니다.
그 결과, 또 다른 피해자들이 입을 다물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3. 고발 이후의 파장 – 극단적 선택, 그리고 그 이후
성폭력 의혹이 제기된 후,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그리고 최근 장제원 전 의원까지—그들의 죽음은 사건의 진상을 영영 알 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서 피해자에게 또 다른 고통이 됩니다.
‘입 다물지 그랬냐’는 시선, ‘죽을 줄 몰랐냐’는 말 없는 압박은 피해자를 또다시 궁지로 몰고 갑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들의 죽음 앞에서 우리 사회는 또다른 질문을 마주하게 됩니다.
“진실은 어디에 있었는가?”, “이렇게 마무리되어도 되는가?”,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피해자는 결국 법정에서 싸울 수 있는 기회도 박탈당하고,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은 ‘말할 수 없게 된’ 존재로 기억됩니다.
이 상황은 피해자에게도, 유족에게도, 그리고 사회 전체에도 상처로 남습니다.
4. 진실의 시간차 – 누가 기다려주었는가
피해자의 ‘고발 타이밍’은 종종 의심의 근거가 됩니다.
“왜 9년이 지나서?”, “그동안 누릴 거 다 누려놓고?”라는 말은 피해자의 시간을 철저히 무시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말할 수 있는 용기’는 개인의 몫이기 이전에, 사회가 만들어줘야 할 구조의 결과입니다.

해외에서도 #MeToo 운동은 수십 년간 침묵했던 여성들의 입을 열게 했고,
그 중심에는 ‘이제는 말해도 되는 사회’라는 믿음이 자리 잡았습니다.
반대로 한국 사회는 아직도 피해자에게 “왜 그때 가만히 있었느냐”고 묻습니다.
우리는 진실을 기다려주는 사회인가요? 아니면 진실을 밀어내는 사회인가요?
5. 기억을 ‘기록’으로 바꾸는 기술 – 말 못한 진실을 지켜내기 위해
장제원 전 의원 사건에서 피해를 주장한 여성은 사건 직후 해바라기센터를 찾아 채증을 받았고, 그 후 오랜 시간 침묵 끝에 입을 열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감정의 분출이 아닌, 의미 있는 ‘준비된 말하기’였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이처럼 구조화된 대처를 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사건 직후의 심리적 충격, 두려움, 그리고 혼란 속에서 말조차 정리하지 못한 채 기억을 흐릿하게 남기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여기서 한국폭력학대예방협회(KAVA)가 개발하고 있는 솔루션은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KAVA는 현재, 피해자들이 사건 직후의 감정, 기억, 정황을 자신만의 속도로 정리하고 저장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 기반 성범죄 상담 지원 시스템을 개발 중입니다.

이 시스템은 피해자의 발화를 심리학적·법률적 범주로 자동 분류하고, 이를 바탕으로 고소·고발을 위한 조서 작성을 지원하는 특화된 LLM(대형언어모델)을 목표로 합니다.
피해자의 ‘기억’이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받기까지는 시간과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 간극을 데이터와 인공지능으로 메우는 역할을 하려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피해자의 진실이 더 이상 왜곡되지 않고, 누구도 다시는 침묵 속에서 고통받지 않도록 하는 길이라 믿습니다.
6. 피해자의 목소리와 동시에, 법의 원칙도 지켜져야 한다
분명, 성폭력 피해자의 고발은 존중받아야 하고,
그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사회적 보호장치는 더 강화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쪽만의 진술을 전제로
타인의 인격과 인생을 송두리째 판단하는 분위기 역시 위험합니다.
장제원 전 의원은 생전에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하지 못한 채 떠났고, 우리는 더 이상 그의 진심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죽음은 죄의 인정인가, 억울함의 표현인가—그 어느 것도 함부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피해자의 고통만큼, 사회적 ‘무죄추정의 원칙’과 인간으로서의 존엄 역시 함께 지켜봐야 한다는 과제를 마주하게 됩니다.
성폭력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거나 폄훼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닙니다.
다만, 여성의 말만으로 누군가를 ‘가해자’로 단정하고,
사회가 마치 법정보다 앞서 판결을 내리는 분위기는
또 다른 종류의 폭력일 수 있습니다.
진정한 정의란, 누구도 억울하게 다치지 않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의로운 사회란,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기다릴 수 있는 여유와,
모든 사람의 목소리를 존중할 줄 아는 구조를 갖춘 사회입니다.
우리는 지금 성폭력이라는 중대한 사회 문제를 두고,
피해자의 고통과 가해자로 지목된 이의 죽음이라는 두 개의 비극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 두 비극은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감당하지 못한 책임의 공백에서 비롯된 결과일 수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는 여전히 말하기 두렵고,
그 말을 믿는 사회도, 그 말을 책임 있게 판단하는 절차도 여전히 미숙합니다.
한편으로,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들은 진실을 말할 기회조차 없이 ‘사회적 사형’에 가까운 대우를 받으며, 죽음으로 진실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집니다.
이 모순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균형 있는 사회 인식, 정밀한 법적 절차, 그리고 피해자를 위한 구조적 보호 장치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저희 한국폭력학대예방협회(KAVA)가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KAVA는 지금,
성범죄 유형별 사례 데이터를 기반으로 민감정보 보호 체계를 갖춘 고품질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특화된 AI 솔루션 개발과
고소·고발 과정에서 정확한 조서 작성과 진술 보조가 가능하도록
대규모 언어모델(LLM) 구축을 위한 데이터 수집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KAVA는 단지 기술 개발에 그치지 않고,
피해자의 심리 회복을 돕고, 2차 피해를 예방하며,
사회 전체가 ‘침묵의 공포’가 아닌 ‘말할 수 있는 용기’로 변화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과 대국민 인식 개선 캠페인을 병행할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는 성폭력 논의가 결코 특정 성이나 진영의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에서, 누구도 억울하게 희생되지 않도록,
사실에 기초한 대응과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공정한 논의 구조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진실은 누군가를 파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무기여야 합니다.
그것이 KAVA가 걸어온 길이며, 앞으로도 지켜가야 할 방향입니다.
"진실은 말할 용기를 가진 이에게 귀를 기울일 줄 알고, 듣는 이에게도 정의를 지킬 여유가 있을 때 비로소 세상을 바꾼다."
